박근혜, 삼성서울병원장에 "보수적으로 대처하라" 지시.. 무슨 의미?

[코리아데일리 한승미 기자]

메르스 사태가 장기전이 된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이 삼성서울병원장을 만나 면담한 사실이 관심을 받고 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은 17일 "6월 말까지는 메르스 사태를 종료시키겠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문형표 장관은 이날 세종시 보건복지부 중앙 메르스 관리대책본부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대책을 차질없이 추진한다면 아마 잠복기가 전체적으로 6월 말까지는 끝나게 될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에 "글로벌 시대에 사실은 해외 감염병이 언제라도 유입이 될 수가 있다"면서 "역학조사를 큰 원을 그려가면서 하자, 국제적인 매뉴얼이 이렇다 하더라도 한국의 특수한 상황, 처음 겪는 것이라서 가능한 한 보수적으로 대응하는 게 최고일 것 같다"고 철저한 대응을 지시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충북 오송 보건의료행정타운 안에 있는 국립보건연구원을 찾아 이주실 원장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배석한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을 질책했다.

박 대통령은 "지금 이제 메르스 확산이 꺾이려면 전체 환자의 반이 나오고 있는 삼성서울병원이 어떻게 안정이 되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한다"며 "삼성서울병원의 모든 감염과 관련된 내용들이 아주 투명하게 전부 공개가 되고, 그래서 의료진 중에서 모르는 사이에 뭔가 접촉이 있었다든지 그런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전부 좀 알려져서, 모를 때 더 불안하거든요. 그래야 더 확실하게 대처를 하니까, 그런 거는 전부 좀 투명하게 공개가 됐으면 한다"며 철저한 정보 공개를 촉구했다.

박 대통령은 "삼성서울병원에서의 문제가 확실하게 여기서 차단이 되면 종식으로 가는 데 큰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며 "적극적으로 좀 더 협조를 해서 힘써 주시기 바란다"며 거듭 적극적 협조를 촉구했다.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은 이에 박 대통령에게 허리를 굽혀 사과하면서 "메르스 사태 때문에 대통령님과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 드렸다. 너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저희가 보건당국과 긴밀히 협조해서, 최대한 노력을 다 해서 하루빨리 끝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송 원장에게 "보수적으로 이렇게 하실 필요가 있다"며 "잘해주시기 바란다"고 거듭 당부했다.

한편, 삼성서울병원은 5월30일 의료진·환자 등 893명을 격리했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격리 대상자는 6월2일 791명, 6월3일 1364명이었다. 정부가 삼성서울병원의 격리 대상자를 제외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보건 당국은 건양대병원·을지대병원 등 다른 병원에 대해서는 메르스 환자가 생기자마자 격리 조처를 내렸음에도 유독 삼성서울병원만큼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정부가 삼성서울병원에 특혜를 준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또 정부가 메르스 환자가 나온 병원명 공개에 난색을 보였던 이유도 삼성서울병원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가정의학과 전문의)은 “정부로부터 불이익을 받을까 봐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병원이나 의사는 정부에 협조하지 않고는 일을 할 수가 없다”며 “이번 사태가 진정된 후 국정감사를 통해 밝혀야 할 의혹”이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삼성서울병원은 영리병원 도입 등 정부의 의료정책에 호의적인 편이었고, 정부는 그런 병원을 잃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정부와 병원은 연구비로도 묶여 있다. 정부는 주로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연구비를 지원한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연간 1조원가량의 세금이 의료 분야 연구에 투입되는데, 교수 대다수는 자신이 관심 있는 연구에 그 돈을 쓴다”며 “공익적 가치가 있는 연구는 거의 없는 실정이어서 국민 돈이 허투루 쓰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사태 이후 정부는 매년 감염병 연구에 1000억원을 투입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가 내놓은 2015년 감염병 연구 동향 보고서를 보면, 정부는 3년간(2010~12년) 대학, 국공립 연구소 등이 진행한 2688개 감염병 연구에 3848억원을 지원했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한 연구에 1억원 남짓인데 이는 연구에 필요한 행정비도 안 되는 액수”라며 “그나마 치료나 백신 개발 연구에 돈을 썼음에도 치료제나 백신을 개발했다는 소식은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복지부는 5년 동안 감염병 위기 대응에 854억원을 투입했다. 같은 기간 질병관리본부는 감염병 관리 기술 개발에 323억원을 사용했다. 그런데도 신종플루 사태, 메르스 사태 등 감염병 확산이 반복되고 그때마다 방역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연구 분야가 편중된 탓이라는 지적이 있다. 실제로 감염병 연구비의 67.5%는 치료 기술과 기초연구 개발에 사용됐다. 진단·감시 등에는 20% 남짓 배정됐다. 예방보다는 치료에 우선순위를 둔 지원이었다. 이 보고서는 “인프라와 일반 사업에 연구비가 상당 부분 쓰였고, 감염병 연구에는 적게 지원됐다”며 “국가 방역 체계와 사회의 감염병 대응 역량에 직접 도움이 되는 감염병 연구가 많아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메르스 사태로 감염병 연구에 대한 투자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연구 분야의 편중 현상을 바로잡지 않으면 제2의 메르스 사태는 또다시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이번 메르스 사태 때 감염병 전문가들이 올바른 목소리를 내지 못했으면서도 감염병 분야에 더 많은 예산을 배정해달라고 아우성을 칠 것”이라며 “연구비 나눠 먹기 풍토를 없애고 실제 사회적 대응에 이바지하는 연구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사태를 경험한 정부는 감염병에 국가적 대응 필요성을 절감했다. 2010년 신종인플루엔자 범부처 사업단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700억원에 육박하는 나랏돈을 투자했다. 정부는 이 사업단 단장에 김우주 고려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를 임명했다. 2008~09년 당시 김 교수는 감염내과 전문가 단체인 대한감염학회 부회장이었고, 2013~14년 부이사장을 거쳐 지난해 이사장이 됐다. 전임 이사장은 송재훈 삼성서울병원 원장이다.

이는 정부가 감염 전문가들을 손에 넣은 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감염 전문가들은 정부의 안일한 방역 조치에 입바른 소리를 내지 않는다. 기자들의 취재에 일부 감염내과 전문의들은 “의사 개인이 어떤 말을 하기보다는 대한감염학회로 창구를 일원화해서 언론에 대응하기로 했다”며 말을 아꼈다.

이에 대해 노환규 전 의사협회장은 “메르스 난리 통에도 이상하리만큼 감염내과 의사들이 정부의 늑장대응이나 방역 시스템 허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며 “병원 명단 비공개 등을 고수하는 등 오히려 정부 당국에 협조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지적했다. 우석균 정책위원장도 “의사나 병원 관련 단체가 정부로부터 독립된 기능을 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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