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밀알 같은 삶 국민 열망 ‘가슴에 묻고 품어’

[코리아데일리 이규희 기자]

6일 밀알 같은 삶으로 국민의 열망을 가슴에 안고 있는 정치인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고문이 회제다.

그 이유는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고문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차세대 대통령감으로 칭송을 받고 있는 그의 삶은 특별하기 때문이다.

이런 손 전 고문이 국민들로부터 주목을 받는 것은 지난 대선, 4번의 재보궐선거에서 패한 새정치민주연합은 차기 당 대표나 대선후보를 중도표를 흡수할 수 있는 인사를 영입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는 현실정치에 손 전 고문의 역할론이 다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 서울로 이사를 하면서 야권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는 손학규 전 고문
국민들이 손학규 전 상임고문을 하면 떠오르는 것은 ‘저녁이 있는 삶’이었다. 손학규 전 상임고문은 지난 2012년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 나서면서 슬로건으로 ‘저녁이 있는 삶’을 내걸었고 이는 큰 공감대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손학규 전 상임고문이 정계를 은퇴할 때도 ‘저녁이 있는 삶’을 완성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그렇다면 손학규 전 고문이 말한 ‘저녁이 있는 삶’은 “전태일 열사가 40년 전에 분신하면서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라고 한 정신을 제대로 실현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손학규 전 고문은 그러면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고 노동자에게도 인간을 회복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등 경기도 지사를 하면서 도민을 위한 삶을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정치를 잘 했기에 아직도 국민들은 손학규 전 고문에 대한 기대가 높아 차기 대선후보로 기대를 하는 국민들이 많다.

이처럼 한국 정치사에 큰 획을 긋고 있는 손학규 전 고문은 1947년 경기도 시흥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으며 교사였던 아버지는 그가 4살 되던 해인 1950년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 정치권 컴백을 눈앞에 두고 있는 손학규 전 고문
특히 어머니의 엄한 가정 교육으로 어릴 시절 삶을 살아온 손 전 고문은 1965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 입학, 70년대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이후 1981∼88 옥스퍼드대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를 수료하는 등 영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인하대와 서강대 정치학과에서 4년간 교수를 역임했다.

이러한 손 전 고문은 1993년 민자당(현 새누리당의 전신)에 입당하면서 정치에 입문, 제14대 국회의원 보궐선거로 민주자유당 국회의원이 되었고, 제15대 총선에서 재선, 제33대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또 제16대 총선에서 당선되어 3선 의원이 된 손학규 대표는 2002년 6월 13일 제31대 경기도지사가 되었다. 2008년 1월 대통합민주신당(현 통합민주당)의 대표로 선출, 구(舊)민주당을 통합시켰고, 그해 4월 17대 총선을 이끈 후, 7월 통합민주당 대표직에서 퇴임하였다. 2010년 10월 3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2년 임기인 당대표로 선출되기도 했다.

▲ 예전 한 행사장서 악수중인 손학규 고문돠 정동영 전 장관
이에 앞서 2008년 1월에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표로 선출된 손학규 전 고문은 민주당과의 통합을 주도하여 통합민주당을 창당하여 2008년 4월 통합민주당의 18대 총선을 이끌었으나, 299석 중 81석을 얻는 데 그쳤다.

같은 해 7월 6일 통합민주당 대표직을 사임하면서 반성의 시간을 갖겠다는 말을 남기고 강원도 춘천으로 떠나 칩거했다.

그는 2010년 8월 15일, 춘천을 떠나며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고 "시혜적 복지, 잔여적 복지가 아니라 보편적 복지"를 강조했으며 "진보적 자유주의의 새로운 길이 추구하는 사회는 정의로운 복지사회로서 공동체주의와 보편적 복지를 기본 이념으로 할 것"이라며 정계에 복귀했다.

이후 민주당 대표가 된 손학규 전 고문은 2010년 12월 8일부터 12월 28일까지 전국을 돌며 민주대장정을 전개했으며, 2011년 1월 3일부터 다시 전국을 돌며 시민들의 건의와 주장을 경청하고 민주당의 보편적 복지 노선을 설명하고 토론하는 희망대장정을 전개해 국민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었다.

손학규 전 고문은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시절이던 2012년 6월 14일 18대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당시 민주통합당은 8월 25일 제주도를 시작으로 완전국민경선을 시작했으나, 26일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 후보가 모바일 투표 방식의 문제를 제기하며 경선 중단을 요구했고, 민주당 지도부는 이미 실시된 제주,울산 지역의 투표를 재검표하고 모바일투표의 고지사항을 강화하기로 결정했으나 세 후보가 울산경선에 불참함으로써 경선은 파행으로 치달았다.

다음날, 제주울산지역 모바일 투표에 문제점이 없다고 결과가 발표되자 후보들은 경선에 복귀하였다.

▲ 인터뷰중인 손학규 전 고문
하지만 손학규 전 고문은 문재인 현 대표에게 패하여, 후보로 선출되지 못했다. 이후 문재인이 대선에서 패함으로써, 정권 교체는 실패하였다.

2013년 10월, 손학규 전 고문은 10·30 경기 화성갑 보궐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은 손학규를 화성갑에 전략공천하는 방안을 내세웠으나, 그는 "대선에 패배, 정권을 내주게 한 죄인이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게 국민 눈에 아름답게 비쳐지지 않을 것"이라며 "내 입장에서 아무리 희생과 헌신을 한다고 생각해도 국민 눈에는 욕심으로 여겨질 것이다. 국민 눈으로 당과 나를 되돌아보니 이 결론에 도달했다"며 고사한 원칙있는 삶을 살아왔다.

그후 2014년 7월 31일, 7·30 수원 병 재보궐선거에 출마했으나 새누리당 김용남 후보에 패하였으며, 정계 은퇴를 선언하여 토담집에서 기거를 하다가 최근 서울로 다시 이사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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