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콴유 누구? 광둥에서 온 91년 생애

[코리아데일리 이옥희 기자]

29일 영결식을 가진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는 전 세계의 오열속에 영원한 안식처로 떠났다.

리콴유 23일 91세로 별세를 한 그는 싱가포르의 1대 총리이자 전 내각 선임장관 및 고문장관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 29일 영결식을 끝으로 역사속으로 사라진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이러한 그가 주목을 받는 것은 싱가포르는 말레이 반도 끝자락에 붙어 있는 작은 섬이다. 마름모 모양의 싱가포르 섬(면적 544㎢)과 60개의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싱가포르의 전체 국토 면적은 685㎢로 서울(605.5㎢)보다 조금 넓다. 그것도 그나마 조그만 섬을 다 이어 붙여 나온 수치이다. 나라가 좁다 보니 나라 이름과 수도가 같다. 한 도시가 국가이니 도시국가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싱가포르는 말레이 반도와 도로, 철도로 연결되어 있다. 남서쪽에는 믈라카 해협을 두고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와 마주보고 있다. 지도를 놓고 보면 남중국해 뱃길이 지나는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이 길을 통해 유럽인들이 중국과 일본으로 갔다. 싱가포르가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아무래도 영국이 진출하면서부터다. 영국은 1826년에 싱가포르를 해협식민지(the strait settlements)로 손에 넣었다. 나중에 영국 동인도회사, 영국령 인도정청(British India)을 거쳐 1867년에 영국 직할 식민지가 되었다.

▲ 리관유 전 싱가포르 총리 부부
이 곳의 대부분의 국민들은 들이다. 하카 중에는 19세기 이후 중국 대륙의 정치적 불안정이나 자연재해로 고향을 떠나온 사람도 적지 않았다. 리콴유의 집안도 본래 광둥(廣東) 출신 하카이다.

그의 증조부인 리복분은 1870년에 싱가포르로 이주해서 돈도 꽤 벌었다고 한다.

그는 싱가포르에서 자신보다 먼저 중국을 떠나 이곳에 정착한 세우 후안 네오와 혼인을 하고 아들도 낳았다. 그는 1882년에 부인과 자식을 싱가포르에 놔둔 채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는 고향에서 다시 재혼했고 풍요로운 삶을 누렸다고 한다. 리콴유는 지금도 한족이 지배하던 명나라의 추억에 젖어 명나라 관복을 입고 있었던 리복분의 초상화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싱가포르에 남은 아들 이름이 리 훈 레옹인데, 그가 바로 리콴유의 할아버지이다.

그는 리콴유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인물이기도 하다. 1871년 싱가포르에서 태어난 리 훈 레옹은 영국식 언어와 예절에 익숙해서 실제로는 영국인의 기질을 다분히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당시에는 네덜란드령 동인도)를 왕래하는 국제 증기선의 사무장이었다. 영국인들이 주 고객이다 보니 사고방식이나 생활 자체가 영국식이었고 집안에서 쓰는 언어도 점차 영어가 되었다.

한편 1923년 9월 16일 출생한 리콴유는 19세기 싱가포르로 이주한 부유한 중국계 가문 출신으로, 명문 래플스 중ㆍ고등학교와 래플스 대학을 거쳐, 1949년까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이후 싱가포르에서 변호사가 되어 노동운동에 가담했고, 우편집배원ㆍ전화교환원 노조 파업과 해군기지 노조 파업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싱가포르 정치계에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1954년 인민행동당을 창당, 사무총장이 되었고 1959년 인민행동당이 의회 다수당이 되면서 싱가포르 영연방 자치령의 초대 총리에 올랐다. 1963년 9월 영국에서 독립한 싱가포르 주정부 총리를 지냈고, 1965년 8월 말레이시아연방에서 독립된 이후에도 총리직을 유지해 30여 년간 싱가포르 총리로 있다가, 1990년 11월 퇴임했다.

퇴임 직후 선임장관으로 추대되었고, 2011년 5월까지 고문장관을 역임했다.

리콴유는 총리 시절 유교적 철학에 바탕을 둔 '아시아적 권위주의'로 유명했으며, 개발독재를 펼쳐 '독재자'와 '싱가포르를 눈부시게 발전시킨 공로자'라는 평가를 동시에 받았다.

연평균 경제성장률 10%를 달성하는 등 고도성장을 이뤄내, 싱가포르를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 하나로 만든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부패행위조사국(CPIB)에 막강한 권력을 부여해 공직자 부정을 엄단하는 한편, 공직자 급여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상해 싱가포르를 아시아에서 가장 부정부패가 적은 나라로 만들었다.

한편 리콴유의 장남인 리센룽(李顯龍)은 부친이 총리로 재직하던 1984년 의회의원에 당선되었고, 2004년 8월 고촉통(吳作棟) 전 총리에 이어 제3대 싱가포르 총리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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