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집안 어마어마 ‘가문의 영광’ 속에 얽힌 정치 애정사

[코리아데일리 아옥희 기자]

국내 정치인 가운 데 가장 예쁜 나경원 의원은 1963년 12월 6일, 대한민국의 사학재단인 홍신학원의 설립자이자 이사장인 나채성의 4녀 중 장녀로 태어랐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가문의 후손이다.

계성초등학교 시절, 아동극 연출 지도 교사로 온 배우 서인석에게 오디션을 통해 발탁되어 연극부 활동을 하기도 했다.

▲ 나경원 의원
나경원 의원은 숭의여자중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여자고등학교 시절에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전체 557명 중에 1등을 차지할 정도로 3년 내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 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국제법을 전공하였으며[ 30세가 되던 1992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같은 학교 동기인 김재호 씨와 결혼하였고, 1남 1녀를 두었으며, 딸은 다운증후군이 있어 아련한 사연에 알려진 가문의 영광의 중니공이라 할 수 있는 정치인이다.

특히 나경원 의원은 사법연수원 24기를 10위권 이내의 성적으로 수료하고 1995년 부산지방법원 판사에 임용되어 4년간 근무하였다. 이후, 1999년 인천지방법원, 2002년 2월 서울행정법원까지 총 7년 6개월간 판사로 재직하였다.

나경워 의원의 정치 입문은 2002년, 제16대 대선 기간, 이회창의 요청에 따라 한나라당에 입당하여 정치에 입문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여성판사가 판사를 그만두고 정치권에 뛰어든 것은 추미애 이후 두 번째다.
당시 나경원 의원은 ‘소신 판결을 해온 이회창 후보를 법관시절부터 존경해 왔다’고 밝혔다.

‘정치인 나경원’은 2003년 7월 10일 한나라당 운영위원 이후 한나라당에서 활동하며 12월 29일에는 17대 총선을 앞두고 공천심사위원으로 임명되었다.

2004년 3월 30일, 비례대표 11번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뛰어들어 당선되었다. 당선 직후 교수출신 당선자들과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정책을 공부하며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을 갖추어 나갔다.[23] 당선자 연찬회에서는 “감동을 주는 정치를 하겠습니다”라고 포부를 밝였다

5월 12일에는 중도개혁보수를 지향하는 초재선의원의 모임인 ‘푸른정책연구모임’의 발족과 동시에 참여하였다.

당초 문화관광위원회에 지원했지만 당시 초선의 핸디캡에 막혀 정무위에 배정되었다.

딸이 다운증후군이 있다는 이유로 차별을 당한 경험을 살려 국회의원과 장애아동 부모 및 전문가 등이 의견을 나누는 연구모임 ‘장애 아이,We Can’을 만들고 회장을 맡았다.이어 한나라당 당직 개편에서 장애인복지특위 위원장이 되었다.

▲ 지역구를 돌면 지역민과 대화중인 나경원 의원
한때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해 낙선한 이후 정치계를 떠나 있었으나 2014년 7월 30일 재보궐선거에 정몽준 의원의 서울특별시장 출마로 인해 공석이 된 서울 동작구 을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7.30 재보궐선거에 당선됨에 따라 나경원은 새누리당 내 유일한 여성 3선의원이 되었고, 상임위는 외교통일위원회를 배정받았다.

이후 2015년 2월 26일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 유기준 의원이 해양수산부 장관에 내정됨에 공석이 된 외교통일위원장을 정두언 의원와 경선을 벌여 135표 중에 92표를 얻어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에 당선되었다.

이는 헌정사상 외교통일분야 상임위에 여성 의원이 처음으로 선출돼 국내 정치인 가운데 차기 대권도 가능할 정치인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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