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회장 ‘도전정신’ 현대家 자동차 얽힌 보릿고개 추억담

[코리아데일리 서보원 기자]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은 국내 경제계의 큰 획을 긋은 기업가 및 정계의 인사이다.

그러나 그 시작은 미약했다. 그럼에도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오로지 ‘사업보국’의 일념으로 기업을 일으켰고 경영철학은 ‘보릿고개’를 겪던 한국을 부강한 나라로 만드는 밑거름이 됐다.

이러한 가운데 “자동차는 달리는 ‘국기(國旗)’다. 만약 성공하지 못한다 해도 내 후배들에게 자동차산업 발전을 위한 디딤돌을 놓을 것이다.”

▲ 소를 몰고 북으로 향하는 살아생전의 정주영 회장
현대그룹의 창업주인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의 창업정신이 주목받고 있다. 1000만 관객을 넘어선 영화 ‘국제시장’에서 우리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정주영 명예회장이 우리 기억에 남긴 발자취는 선명하기 때문이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1946년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설립했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자동차 회사 설립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1975년 5월 리처드 스나이더 주한 미국대사는 정주영 명예회장에게 자동차의 독자 기술 개발을 포기하라는 권유도 했다. 스나이더 대사는 당시 “독자 모델을 포기하면 모든 힘을 다해 도와드리겠다”며 “현대가 미국 회사를 선택하기만 하면 유리한 조건으로 조립생산을 지원하겠다”고 정주영 명예회장에게 말했다.

독자기술 개발 대신 미국 자동차 회사의 조립공장이 되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정주영 명예회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외국 자동차 조립생산은 당장은 좋을지 몰라도 결국 속 빈 강정”이라고 평가했다. 장래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의 이같은 생각은 우리나라가 자동차 산업 성장의 분기점이 됐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사업의 미래를 위해서는 주변의 조언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였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재계에는 익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정주영 명예회장은 고(故) 이상순 일산실업 명예회장(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의 장인)과 가까이 지냈다.

▲ 젊은 시절의 정주영 회장
정주영 명예회장은 이상순 명예회장과 전국의 이곳저곳을 함께 돌아다니며 사업 구상과 터에 대해 함께 논의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이상순 명예회장과 정주영 명예회장은 아홉 살의 나이 차이에도 형 동생처럼 친하게 지냈다”며 “한국 산업의 창업정신을 일군 1세대”라고 말했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도전정신과 창업정신은 지금의 범 현대가가 물려받았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현대차가 ‘싸구려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로 발돋움시켰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글로벌 생산량 5위를 기록할 정도로 전 세계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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