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여론·새누리당 요구에 밀려 6일만에 번복

[코리아데일리= 송선일 기자 ]

고소득층의 보험료를 올리고 저소득층의 보험료를 내리는 쪽으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개편하려다 갑자기 연내 논의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던 보건복지부가 비판여론이 거세지자 또다시 태도를 바꿔 연내 추진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보건복지부 핵심 당국자는 3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정부가 건강보험 수가체계 개선안을 마련하면 당이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천명한 만큼, 이른 시일 안에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 정부안을 만들어 당정협의를 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월 28일 문형표 복지부 장관이 논의중단을 선언한 이후 6일 만에 재추진 의사를 밝힌 것이다.

이처럼 '연내 논의 불가'에서 '연내 논의' 쪽으로 복지부의 기류가 급격히 변한 것은 김무성 대표에 이어 비박(非朴)으로 분류되는 유승민 의원이 원내대표로 선출되면서 여당 지도부가 건보개편 연기 방침 등 정책혼선에 대해 강력히 경고하고 나선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당국자는 "여당의 원내사령탑이 바뀐 만큼 중단된 건보료 개편 논의가 당정협의 등을 거쳐 재개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날 임시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건강보험료 개편 연기를 비롯한 정책 혼선과 관련, 국무총리를 비롯한 내각에 대해 "위기의 종이 울리는 데 앞장서지 않거나 충분한 고민 없이 정책을 쏟아내고 조변석개하는 행태를 보여서는 절대 안 되겠다"고 경고했다.

유승민 원내대표도 이날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발표를 연기한 건강보험 개편에 대해 "저소득층한테 혜택을 주려던 개편의 취지는 옳다고 생각하고 당장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유 원내대표는 "무엇 때문에 발표를 못 했는지, 어떤 점을 수정·보완해야 하는지 들어보겠지만, 완전히 추진하지 않고 백지화한다는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안이 사실상 백지화된 데 대한 비판여론이 들끓자 청와대는 두 차례에 걸쳐 "백지화는 아니다"며 진화에 나섰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지난 1월 30일 "'연내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안이 발표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당정회의에서 종합적으로 처리할 문제"라며 재추진 여지를 남겨뒀다.

문형표 복지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의 사회적 공감대를 얻으려면 좀 더 자세한 시뮬레이션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올해 중에 개선안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면서 건보료 개편 논의를 사실상 백지화하겠다는 방침을 시사했다.

정부가 건보체계 개편안 마련을 중단키로 한 데 대해 '연말정산 파문'이 커지는 상황에서, 고소득 직장인과 고소득 피부양자에게 보험료를 추가로 물리는 내용의 개편안이 나오면 이에 대한 반발이 커질 수도 있다는 점을 의식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복지부의 건보료 개편중단 선언 이후 비판여론이 불붙었다.

보건의료시민단체는 "돌연한 논의 백지화는 황당한 정책 후퇴이며 정치적 셈법에만 치우진 결정"이라고 지적하며 재추진을 강력하게 촉구했다.

정부의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 기획단을 이끌었던 이규식 위원장(연세대 명예교수)은 2일 "기획단이 1년 6개월을 논의했는데도 불구하고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다는 것은 무책임한 변명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고, 위원장직을 사퇴했다.

정부는 직장가입자, 지역가입자로 이원화돼 서로 다른 기준으로 건보료를 부과하는 현재 기준이 공정성과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소득 중심으로 단일화하기 위해 2013년부터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 기획단을 꾸려 논의를 진행했다.

지난해 9월에는 직장가입자의 보수 외의 소득에 건보료 부과를 확대하고, 지역가입자 건보료 산정 기준에서 성·연령과 자동차 등을 제외하는 내용의 개편 기본 방향을 제시했다.

부과체계가 개편되면 전체 지역가입자 80%가량인 600만 세대 이상의 건보료가 지금보다 낮아진다. 그렇지만, 보수 외에 추가 소득이 많은 일부 '부자 직장인'이나 연금 등의 소득이 많은 '고소득 피부양자' 등 45만 세대가량은 건보료 인상이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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