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고압적 태도에 "잘못된 사고 바로 잡아야"
원자바오, MB에 '김정일 정상회담 희망의사' 수차례 전달
천안함 폭침규명 길어져 무력응징 포기…회고록서 비사 공개

[코리아데일리= 이옥희 기자 ]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경제적 대가를 바란 북한의 태도로 남북정상회담이 틀어졌으며, 중국은 남북을 오가며 회담 성사를 위해 적극 중재에 나섰다고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공개했다.

또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에도 정상회담 논의는 계속 됐으며, 비밀 접촉을 담당했던 북한의 고위 관계자가 공개 처형되기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 잘못된 사고 바로잡아야" =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당시 조문차 방한한 북한 대표단은 이 전 대통령의 예방을 원한다고 당시 한나라당 임태희 정책위의장을 통해 전했다.

이 전 대통령은 "불쑥 면담을 신청했다고 기다렸다는 듯이 만나주는 것은 북한의 착각을 더욱 견고히 할 뿐"이라면서 "무엇보다 잘못된 사고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북한이 시혜를 베풀듯 정상회담에 응하고, 경제적 보상을 요구하던 관행에서 벗어나려 했다는 것이다.

결국 북한 조문단은 하루가 지난 후 일반 출입자와 같은 절차를 거쳐 청와대를 방문해야만 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직후인 서울을 비밀리에 방문했던 북측 인사가 공개처형되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은 "2010년 12월5일 북측 인사가 비밀리에 서울에 들어왔다. 대좌(우리의 대령) 1명, 상좌(대령과 중령 사이) 1명, 통신원 2명을 대동했다"면서 "2011년 초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그들이 공개 처형됐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처형된 인물은 류경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으로 추정된다.

정상회담을 논의할 당시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상태는 매우 악화됐던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통령은 "2011년 러시아를 방문한 김 위원장은 만찬장에서 공연팀을 격려하기 위해 불과 20∼30센티미터 높이의 단상에도 혼자 올라가지 못했으며, 3개월 후인 12월 사망했다"고 러시아 메드베데프 대통령으로부터 들은 얘기를 전했다.

앞서 북한은 이 전 대통령의 취임식에도 참석하겠다는 뜻을 전했지만 불발됐다.

북한이 '대통령 당선에 도움을 줘 감사하다'는 내용의 이 전 대통령 친필 서한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 전 대통령은 "선거 동안 나를 비방하지 않았고, 그 결과 내가 당선됐다는 것인데 어이가 없었다"고 떠올렸다.

◇원자바오, MB와 김정일 간 '메신저' 역할도 = "내가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는데 정상회담을 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2009년 10월 10일 베이징에서 열린 한·일·중 정상회의에서 이 전 대통령과 만난 중국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전한 내용이다.

이에 이 전 대통령은 정치적 인기를 얻기 위한 회담은 거부하고, 서울에서 개최하자는 뜻을 전달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2주 후 이 전 대통령과 원자바오 총리는 다시 만났다.

2009년 10월 24일 태국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다시 만난 원 전 총리는 "김정일 위원장이 대통령 각하를 진심으로 만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라고 전했다.

이듬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 사태를 거친 후인 2011년 5월22일 일본 도쿄에서 한·일·중 정상회의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도 원 전 총리는 이 전 대통령에게 긴급 전갈을 보냈다.

다음 날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예정이라는 원 전 총리는 "김 위원장은 아무런 조건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김 위원장 밑의 사람들의 권력이 매우 크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통령이 직접 만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라는 것이었다.

요컨대 김 위원장 모르게 북측 관계자들이 여러 가지 경제적 조건을 제시하며 회담을 방해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한편, 퇴임 직전인 2012년 1월 9일 베이징에서 후진타오(胡錦濤) 수석과 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 통일 후 미군은 현재 주둔하고 있는 위치에서 더 북쪽으로 올라가지는 않을 것"이라며 중국을 안심시키고 통일 필요성을 강조했던 일화도 소개했다.

◇천안함 폭침 北 소행 규명 늦어 "어쩔 수 없이 무력 응징 포기" = 이 전 대통령은 "북한의 소행임이 밝혀지자 응징 조치를 생각했지만 증거를 찾는 데 50일이 소모됐다"면서 "무력 보복 조치를 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흘러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고 술회했다.

연평도 포격 당시 '확전 자제'라는 메시지가 와전된 경위도 설명했다.

이 전 대통령은 "하지도 않은 얘기가 왜 뉴스에 나오느냐. 우리 민간인이 포격당했는데 확전을 걱정할 상황이냐"고 질책했지만 자신한 것으로 잘못 알려진 이 발언 때문에 결국 엄청난 후유증을 겪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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