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 한국 음악에 얽힌 변천사 보면,,‘일렁이는 마음의 무늬’

[코리아데일리 강동우 기자]

서울시향은 서울시교향악단의 줄임말이다.1957년 서울특별시 산하에 창단된 교향악 연주단체이며 1945년 김생려(金生麗)를 중심으로 설립된 고려교향악단을 모체로 그후 서울교향악단을 발족하였다.

▲ 서울시향의 정기연주회 지휘자는 정명훈 씨
1950년 해군정훈음악대가 창단해 연주회를 가졌으며, 1954년 해군교향악단으로 개칭하고, 1957년에 서울특별시 산하의 서울시립교향악단으로 재발족했다.

1999년 7월 재단법인으로 전환된 세종문화회관의 전속단체로 편입되었으며, 2005년 6월에 재단법인 서울시립교향악단으로 명칭을 변경하며 독립하였다.

시립교향악단으로는 가장 긴 역사를 가졌으며 세계무대에 우리민족의 예술성과 저력을 확인시키며, 세계적 문화도시 서울의 상징으로 폭넓은 연주회로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서울시향의 제1회 정기공연은 1947년 10월 시공관(명동소재, 현 증권회사)에서 김성태(金聖泰) 지휘로 베토벤교향곡 제1번등을 연주하였고, 제2회 공연은 김준덕(金俊德) 지휘로 베토벤교향곡 제8번등을 연주하였다. 제3·4회정기공연 때는 당시 미국인 방송국 고문이었던 롤프 자코비가 지휘하여 교향악단의 수준향상에 기여하였다.

▲ 정기 연주회하는 서울시향
그 뒤 김생려가 상임지휘자로, 임원식(林元植)이 객원지휘자로 활약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의 발발로 해체되었으나 다시 9·28수복 이후 서울교향악단 잔여 멤버와 음악인들이 해군문화선구대를 조직하고, 1950년 해군창설5주년기념식과 함께 해군정훈음악대(海軍政訓音樂隊)를 창단, 연주하였다.

그 해 12월 단원 150명으로 보강되어 부산으로 내려가 1953년 9월 이전까지 일반시민과 군대위문공연 등으로 활동하였다. 1953년 서울로 환도 후 시공관에서 정기공연을 가지고, 1957년 3월 동남아시아친선사절단으로 사이공·타이베이·홍콩 등지를 순회 연주하였고, 해군교향악단으로 개칭하였다.

그러나 1957년 휴전협정 이후 해군의 교향악단 유지가 어려워지자, 지도자들의 노력으로 1957년 9월 서울시립교향악단이 단원을 흡수하여 재발족하였다.

1965년 일본공연을 시작으로 1977년 동남아 순회공연, 1986년 미국순회공연, 1988년 유럽순회공연,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축하공연 및 1997년 중국 북경공연을 통하여 그 수준을 유감없이 발휘한 바 있다.

▲ 정기연주회하는 서울시향
1999년 7월 재단법인으로 전환된 세종문화회관의 전속단체로 편입되었으며, 2005년 6월에 재단법인 서울시립교향악단으로 명칭을 변경하며 독립하였다. 정기연주회 외에도 많은 특별연주회를 열고 있으며 이 악단의 상임지휘자로는 김만복(金萬福, 1961∼1969)·원경수(元京洙, 1970∼1971)·정재동(鄭載東, 1974∼1990)·박은성(朴恩聖, 1991∼1992)에 이어 다시 원경수(1994∼1996)·마르크에름네르(2000∼2002)·곽승(郭昇, 2003∼2005) 등이 있으며, 정명훈(鄭明勳, 2006∼2009년 현재)이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한편 서울시립교향악단은 우리음악계의 질적 도약과 클래식음악의 저변 확대라는 과제에 기여하며, 도전의식과 개척 정신으로 실험적인 레파토리도 두루 소화하며 한국 교향악단의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법인출범 후 정명훈 예술감독과 진은숙 상임작곡가를 위촉했으며, 지금까지 정기공연, 외부출연공연, 기업판매공연, 찾아가는 시민공연, 특별공연, 실내악공연, 기획공연 등 다양한 공연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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