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회를 이끌 당시의 전두환과 노태우 전 대통령

[코리아데일리 이규희 기자]

하나회(하나會)는 1963년에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김복동 등 대한민국의 육군사관학교 11기생들의 주도로 비밀리에 결성한 조직이다.

이후 육군사관학교의 각 기수를 내려오면서 주로 경상도 출신 소장파 장교들을 대상으로 3-4명씩 회원을 계속 모집하였다.

국방부는 육군사관학교 22기-23기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공식적으로 구성되지 않았다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육사 31기까지도 계속 모임이 결성되었고, 1993년 초에는 육사 31기생이 동기회장을 놓고 난투극을 벌인 끝에, 서울 용산의 군인아파트에 회원 명단이 살포되기도 하였다

1979년에는 육사 11기, 12기생을 중심으로 신군부로 발전하여 12.12 군사반란, 5.17 쿠데타를 주도하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진압 과정에도 참가했으며, 1995년 12.12 및 5.18 사건 재판에서 신군부 핵심 인사들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나회 창설은 1951년, 4년제 육군 사관학교 첫 입학생 중 영남 출신 생도, 전두환 노태우 김복동 최성택 박병하 등 5명이 5성회를 조직한 것이 시초이다.

전두환 주도로 육군사관학도들은 5.16 군사정변 지지 시위를 벌였고, 이는 박정희 소장의 관심을 끌었다. 이후 5성회는 회원을 지속적으로 받아들여 확대 개편 과정을 여러번 거쳤다. 이들은 1963년 7월 6일을 기점으로 육사 8기를 몰아내기 위해 '7.6 친위 쿠데타'를 기획하였으나 실패하였다. 동향 출신 세력을 키우고자한 박정희는 이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하나회에 가입하기 위해서 가입 대상자는 보스에게 절대 복종을 강요하는 서약 절차를 거쳤는 데 그 내용이 경악적이다.

▲ 하나회를 전격 해체 시킨 김영삼 전 대통령
하나회의 선후배와 동료들에 의해 합의된 명령을 복종한다.
하나회원 상호 간에 경쟁하지 않는다.
이상의 서약을 위반할 시 '인격말살'을 감수한다

하나회 회원들은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보안사령부 내사과 등의 진급 담당 요직을 점거하여 승진이나 자리이동때 선배가 후배를 추천하고 밀어주는 식으로 군내 주요 요직을 독점하였다.

팀의 초기 리더는 윤필용과 전두환 등으로 1973년 윤필용 사건으로 한풀 꺾이지만, 조직의 다른 우두머리인 전두환은 기적적으로 보안사령관으로 복귀, 그에 대한 박정희의 각별한 신뢰를 바탕으로 그 이후에도 계속 세력을 확장하였다.

하나회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충성을 맹세하며 대통령의 지원을 받아 엄청난 세력이 되었으며, 서로에 대해 "형님"이라는 암호명으로 서로가 하나회 멤버임을 과시했다.

이러한 가운데 1979년에는 10·26 사건 이후 육사 11기, 12기생 회원들을 중심으로 권력공백기를 이용하여 군의 정상적인 지휘체계를 무시하고 군내 각 요직에 배치된 하나회 회원들이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의 뜻에 따라 12·12 군사 반란을 주도했다.

▲ 12,12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당시 하나회 회원들
12·12 군사 반란이후 하나회 인사들은 군의 핵심 요직에 올랐다.

또한 전두환은 12·12 군사 반란을 묵인한 이희성을 계엄사령관 겸 육군참모총장에, 황영시를 육군참모차장에 직접 임명하였다. 12.12에 참여한 하나회 회원과 12·12 군사 반란 비호한 일부 장성들의 세력은 신군부로 불리게 되었다.

전두환을 중심으로 하는 신군부는 5월 초 집권 시나리오를 기획하여, 신군부 방해 세력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5·17 쿠데타을 일으켰다. 신군부는 정치인과 재야인사들을 불법 연행하고, 국회에 군병력을 주둔하여 임시국회를 무산시키는 등 반대 세력을 탄압하였다.

신군부는 5·17 쿠데타에 항거하여 일어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진압 하였다. 이후 전두환이 대통령에 취임하자 하나회원들은 육군참모총장, 합동참모의장, 보안사령관, 특전사령관, 수도경비사령관과 같은 군내 요직 뿐만 아니라 전역후에도 장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군부내 막강한 조직인 하나회는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1993년 4월 2일 서울특별시 용산구 동빙고동 군인아파트에 익명의 군인에 의해 '하나회' 명단이 살포되었다.

▲ 하나회의 부활이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다(사진은 한 추모식장에 모인 하나회 회원들)
이러한 사태로 인하여 '군정 종식'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던 김영삼의 문민정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하나회에 대한 대대적인 숙군작업을 진행하였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책임과 12.12 군사정변에 대한 책임을 물어 전두환·노태우 등 관련자들은 재판에 회부되었다.

그러나 하나회는 사실상 육사36기 부터 종식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일각에서는 현 소장, 준장급 장성들 가운데 하나회 멤버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고, 예비역 단체도 잠식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군부라는 인식이 없지만 내부적으로 알력이 아직도 상당히 남아있다. 때문에 대령에서 준장으로의 진급심사에서 총 공석 55자리 중 육사출신이 무려 40석이나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전체 진급총원의 78%에 달한다. 이는 비육사 출신 공석을 모두 합친 것보다 3배 가까이 많은 숫자이다.

이와는 달리 군내 유사한 사조직으로 청죽회, 만나회, 알자회, 나눔회가 있었으나 문민정부의 군내 사조직금지조치 이후로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지만 내부적인 알력이 아직 남아 있으며 특히 현역에서 예비군의 세력다툼이 심각해 청산해야 할 문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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