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진아 오늘의 영광속에는 점철된 그의 눈물이...

[코리아데일리 김의도 기자]

인생의 역전으로 오늘 가요계에 스타로 등극한 황제 태진아는 연속의 시련 끝에 일군 아름다운 삶이이라는점에서 가요사의 한 획을 긋고 있다.

그의 이런 모습은 지난 27일 ‘히든싱어3’에서 그 흔적이 드러나 팬들을 아련하게 만들었다.

태진아는 1953년에 충청북도 보은에서 7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에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인해 초등학교 졸업하지 못해 동생들의 학비를 위해 상경해 구두닦이, 중국집 배달원, 식당 종업원 등 안해 본 일이 없다.

그 때 아역연기자로도 활동한 경력이 있다. 태진아는 음식점에서 일하던 당시 작곡가 서승일의 권유로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다. 1972년에‘내 마음 급행열차’를 발표하여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지만 방송도 해보지 못하고 호응을 얻지 못했다.

다음 해 1973년에‘추억의 푸른 언덕’을 발표하여 MBC 신인가수상을 수상하였다.

그러나 데뷔 초 여러 가지 불미스런 일에 휘말려 한동안 방송 출연을 금지당하기도 했다.

불미스런 사건때문에 국내에서 가수로 활동하기가 점점 어려워지자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

미국에서 생활할 때 마땅한 직업이 없어 돈을 벌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나갔고 미국에서 남진의 소개로 이옥형(옥경이의 주인공) 씨와 결혼하였다.

1984년, 4년 만에 귀국하여 복직하였으나 대중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1988년에‘다시 한번 울었네’를 발표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 히든싱어에 출연한 태진아
그후 행운의 여신은 태진아를 버리지 않았다.

태진아는 1989년에‘옥경이’를 발표하였다.

‘옥경이’는 트로트 히트곡 메이커였던 임종수가 작곡한 곡으로 원래 나훈아를 위해 만든 곡으로 원래 제목은‘고향여자’였으나 태진아가 부르기 시작하면서‘옥경이’로 바뀌었다.

태진아는 이 노래로 인기를 얻게 되자 수록된 앨범이 150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하였으며 행사만 15곳을 다니기 시작, 데뷔 이후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기 시작하였다.

특히 ‘옥경이’는 태진아 아내 이 씨의 이름을 건 노래이기도 하여 태진아 본인이 가장 아끼는 노래로 선정하기도 했다.

태진아는 데뷔후 오랜 무명 시절을 보낸 후 뒤늦게 전성기를 이뤄냈다. 1990년에는 ‘거울도 안보는 여자’를 발표하게 되었다. 1990년 대부터 대한민국 가요계는 락, 발라드가 주류를 이루었지만 태진아의 ‘거울도 안보는 여자’는 KBS 가요 톱 10에서 5주 연속 1위에 올라 트로트 부문에서 골든컵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고 그 다음해 후속곡 ‘미안미안해’도 3주 연속 1위를 차지하여 많은 인기를 얻었다.

1991년 ‘선희의 가방’, 1992년 ‘노란 손수건’, 1993년 ‘사모곡’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침체되어 가던 트로트 시장을 부활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후 1993년에는 지구레코드에서 독립하여 개인 소속사 ‘진아기획’을 설립하여 음반제작자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태진아는 당시 신인 가수였던 성진우를 영입해 소속사 사장으로 활약하여 성진우는 태진아가 배출한 첫번째 가수가 되었다. 1996년에는 배우 김자옥을 스카우트하여 가수로 데뷔시켜 ‘공주는 외로워’를 제작, 기획하였다.

현재 한국가수협회장으로 활동 중인 그는 트로트 가수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은 가수이다.

태진아는 또한 작곡가나 작사가로도 활동하여 자신이 작곡이나 작사한 곡은 ‘사랑은 아무나 하나’,‘동반자’,‘잘 살거야’,‘착한 여자’,‘아줌마’, 등이 있으며 비운의 가수 ‘여보’ , 박주희의 ‘자기야’등 수 많은 곡을 히트 시킨 가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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