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

[코리아데일리 이옥희 기자]

정주영 회장은 현대그룹의 창업자이다.

제14대 대통령선거에 통일국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기도 한 그는 1998년 판문점을 통해 '통일소' 500마리와 함께 판문점을 넘어 주목을 받았다. 이후 1998년 남북 민간교류의 획기적 사건인 '금강산관광'을 성사시킨 통일을 위한 산 주역이다

정주영 전 회장 그룹회장의 아호는 아산(峨山)이다.

1915년 강원도 통천군 송전리 아산마을에서 아버지 정봉식(鄭捧植)과 어머니 한성실(韓成實)의 6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30년 송전소학교를 졸업했으나 가난 때문에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농사를 도왔다. 이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여러 차례 가출을 반복한 끝에 1937년 9월에 경일상회라는 미곡상을 시작했다.

1940년 서울에서 가장 큰 경성서비스공장의 직공으로 일하던 이을학(李乙學)의 소개로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수리공장을 인수하게 된다.

그 뒤 1946년 4월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설립하였고, 1947년 5월에는 현대토건사를 설립하면서 건설업을 시작하였다.

1950년 1월 현대토건사와 현대자동차공업사를 합병, 현대그룹의 모체가 된 현대건설주식회사를 설립하였고 1971년 현대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현대건설은 6·25전쟁 후 점차 늘어가는 건설수요를 감안하여 1964년 6월 시멘트공장을 준공하였고, 1970년 1월 현대시멘트주식회사로 독립하였다.

이후 해외건설시장 개척과 울산 조선소 건설, 서산 앞바다 간척사업 등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면서 대기업으로 성장하였다. 2001년 5월 사후에 만해상 평화상을 받았다.

▲ 소 500마리를 몰고 북으로 향한 정주영 전 회장
1987년 명예회장으로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정주영은 1992년 초 통일국민당을 창당하여 대표최고위원이 되었으며, 제14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전국구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같은해 12월 제14대 대통령선거에 통일국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기도 하였다. 1993년 초 통일국민당 대표최고위원직을 사임하고 1993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되었다. 2000년 5월 명예회장직을 사퇴하였으며, 2001년 폐렴으로 인한 급성호흡부전증으로 사망했다.

그는 또 1969∼1989년 지역사회학교후원회 회장, 1977∼1987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1982∼1984년 대한체육회 회장 겸 한국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 1989∼1992년 한·소경제협회 회장 등을 지냈다. 1982년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명예경영학박사, 1995년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에서 명예인문과학박사 등의 학위를 받았다.

1998년 6월 16일 판문점을 통해 북 '통일소'라고 불린 소 500마리와 함께 판문점을 넘는 이벤트를 연출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후 여러 차례 더 방북하며 남북 민간교류의 획기적 사건인 '금강산관광'을 성사시켜 1998년 11월 18일 첫 출항하였다.

제1회 한국경영대상(1987), 국민훈장 무궁화장(1988), IOC훈장(1998), 노르웨이 왕실훈장(1998) 등을 수상하였고, 타임지 선정 '아시아를 빛낸 6인의 경제인'(1996) 등에 선정되었다.

주요저서에 회고록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1991), 자서전 《이땅에 태어나서―나의 살아온 이야기》(1998) 등이 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코리아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