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데일리 곽지영 기자]

12일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위구르족(위구르어: ئۇيغۇر, 중국어 간체: 维吾尔, 정체: 維吾爾, 병음: Wéiwú'ěr, 터키어: Uygurlar, 영어: Uyghur people)은 중앙아시아의 투르크계 민족으로 현재 중국의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와 중앙아시아에 살고 있는 민족이다.

스스로는 동투르키스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역사적으로는 744년, 위구르족은 바스밀(Basmil), 카를룩(Qarluq) 등의 부족과 함께 후돌궐 제국을 멸망시키고 외튀켄(Ötüken)산에서 위구르 제국을 세운다.

중국뿐 아니라 파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몽골, 우즈베키스탄, 독일, 터키, 러시아 등에도 흩어져 살고 있다.

중국에서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뿐만 아니라 후난성 창더 시의 타오위안 현(중국어: 桃源县)에도 살고 있으며, 베이징이나 상하이와 같은 주요 도시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작기는 하지만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뉴욕 시와 워싱턴 D.C.에도 위구르족 공동체가 있으며, 캐나다의 토론토와 밴쿠버에도 살고 있다.

외모는 다양해서 중앙아시아의 투르크계 민족들과 유사한 경우도 있지만, 유럽인처럼 피부가 흰 위구르인들도 있다.

위구르족의 조상은 유목 가오처(高車, 고거)족이다. 타림분지에 살았던 토카라(Tocharians, 月氏)족 역시 위구르의 조상에 포함된다고 보기도 한다.

가오체의 이름은 천막을 옮기기 위한 소가 끄는 수레에서 유래되었으며, 이들은 바이칼호 남쪽 협곡과 예니세이 강 일대에 사는 알타이계의 유목민족이었다.

▲ 의구르족 여인들
이들은 약간의 농업과 예니세이강 유역의 풍부한 철광석을 바탕으로 금속문화를 발달시켰다. 이후 흉노에 복속되어 무기를 제공하였으며 이후 유연과 에프탈의 지배를 차례로 받았다.

450년 가오체는 유연에 반란을 계획하였으나 유연 지배하의 투르크족에 패배한다. 이 사건은 돌궐제국을 오래 괴롭힌 역사적인 투르크와 퇼레스(鐵勒, 철륵)간 원한의 시작이었다. 돌궐이 유연/에프탈을 패배시켰을때, 그들은 퇼레스의 새로운 지배자가 된다.(이 시기에 고거족의 이름은 퇼레스로 바뀐다.) 이 시기에 위구르는 처음으로 중국의 사서에 바이칼 남쪽 지역의 10,000호의 작은 부족으로 기록된다.

퇼레스 부족연맹이 와해되자, 위구르는 중국의 수나라와 연합한 설연타(薛延陀) 연합에 참여하며, 타르두한을 꺾고 독립을 쟁취한다. 이 연합은 603년부터 당 태종이 돌궐제국에 결정적 타격을 준 630년까지 그 자치의 정도를 달리 하며 존재했다. 이 시기에 위구르는 연합 내에서 설연타 다음의 지위를 점유하였다. 전돌궐과 후돌궐의 사이 공백기인 630년에서 683년 사이 위구르는 설연타를 무너뜨리고 부고(僕固), 동라(同羅), 바이르쿠(拔野古) 등 다섯 부족들과 함께 위구르 연합을 구성하여 독립을 선언한다.

중국 측천무후의 재위기간에 후돌궐이 세워지고, 위구르는 다른 유목 터키계 부족들과 함께 후돌궐 제국에 참여한다. 후돌궐 제국은 734년 빌케가한(毗伽可汗)의 사망 이후 그 세가 기울게 된다.

위구르는 중국 동맹국들과 연합한 일련의 반란 뒤에 9개 부족이 연합한 토쿠즈-오구즈(Toqus-Oghuz)라는 부족연맹을 통합하여 새로운 동맹세력, 온 위구르(On-Uygur)의 지도세력이 된다. 십성회흘(十城回吃) 744년, 위구르는 바스밀(Basmil), 카를룩(Qarluq) 등의 부족과 함께 후돌궐 제국을 멸망시키고 외튀켄(Ötüken)산에서 위구르 제국을 세운 전통있는 민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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