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율산 40주년 창사 기념 행사

[코리아데일리 박태구 기자]

율산그룹 신선호 회장이 4일 네티즌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이는 올해 400대 부자에 오른 인물 중에는 1970년대 ‘재계의 무서운 아이들’로 불린 율산그룹 창업자 신선호 센트럴시티 회장은 자산이 7천720억원으로 부자 순위 46위에 올라 화제가 되면서 부터다.

이에 신 회장이 한 때 파문을 일으킨 율산사건을 재조명해보면 1979년 4월 3일 신선호(申善浩) 율산그룹 회장이 외국환관리법 위반과 횡령죄로 구속되고, 14개의 율산그룹 계열사가 도산하거나 경영권이 넘어간 사건을 말한다.

▲ 신선호 회장
신선호 회장은 당시 1975년 6월 자본금 500만 원으로 율산실업을 창립한 뒤 중동 산유국을 상대로 막대한 양의 시멘트를 수출해 돈을 번 인물로, 1970년대 재계의 신화로 일컬어질 정도로 뛰어난 경영 능력을 발휘하였다.

특히 1977년 한 해에 이미 인수한 3개의 기업 외에 8개의 회사를 더 인수해 11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게 되었고, 종업원만도 7,000여 명이나 되었다. 이듬해 종합상사로 발돋움하였고, 1979년 도산 무렵에는 계열사가 14개로 늘어났다.

그러나 1978년 정부의 '8·8 투기억제조치'로 인해 모든 건축자재의 수출이 금지되면서 율산은 자금 압박을 받기 시작하였다.

신선호 회장은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 편법을 써서 서울신탁은행(지금의 서울은행)으로부터 500억 원을 융자받은 뒤, 잠실 호수 부지 매입에 사운을 걸고 총 200만 평 가운데 30만 평을 낙찰받았으나, 이후 나머지 부지가 팔리지 않아 개발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이어 의류사업이 판매 부진으로 고전하자, 티켓을 만들어 관련 기관과 거래처·은행 등에 선물하였는데, 이 방법이 청와대 사정반에 의해 적발되었다.

이로 인해 특별수사본부가 구성되고, 이 티켓을 받은 3,000명의 공무원들이 파면 또는 직위 해제되었으며, 율산그룹의 임원들이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다. 또 이 일과 맞물려 3억 5000만 달러 규모의 사우디아라비아 주택 공사가 최종 계약 단계에서 물거품이 되어 뒤늦게 정부에 구제금융을 요청하였는데, 이때 받은 70억 원의 구제금융 자금마저도 모두 단자회사의 빚을 갚는 데 쓰였다.

더욱이 부동산 투기 억제조치로 인해 땅값마저 폭락하는 바람에 부동산 처분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1979년 2월 채권은행들이 자금난에 허덕이던 율산그룹을 공동감리하기로 결의하고 관리에 들어간 이후, 신 회장의 비리가 중견 간부들에 의해 낱낱이 밝혀지면서 1979년 4월 3일 신선호가 구속되고, 계열사들 역시 도산하거나 남에게 경영권이 넘기게 되었다.

당시 금융부채는 1,523억 원이었다. 이 사건으로 서울신탁은행장이 배임혐의로 구속되고, 제일은행장·한일은행장·조흥은행장이 검찰에 소환되었으며, 은행감독원장을 비롯해 11개 은행장급 인사가 단행되는 등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코리아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