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신동의 모습

[코리아데일리 이경민 기자]

서울역사박물관이 창신동의 역사를 다룬 ‘메이드 인 창신동’ 전시회를 열어 한 때 화제가 됐다.

옛 사진과 자료를 전시하고 봉제공장과 ‘쪽방’도 재현해 놓았다. 경제개발시대의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켰다. 요즘 창신동 골목 풍경을 담은 사진들은 아직도 이런 곳이 남아 있는가 하는 호기심을 갖게 만든다.

과거 봉제공장에는 10대 소녀들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없다. 그 대신 50대 이상으로 머리가 희끗해진 중장년들이 일하고 있다. 청계천에서 10대 때 일을 배운 뒤 여태껏 생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다. 주문을 받으면 하루 안에 제품으로 만들어낸다.

이들은 성실하고 억척스럽게 살며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주역이다. 서울시는 창신동 봉제공장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내 한 가운데 아직도 집과 일터, 어른 방과 아이 방 구분도 없는 다세대주택이 쭉 늘어선 곳이 창싱동의 오늘 모습이다.

반 지하 작은 봉제공장 980여 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창신동. 문을 열면 옷감 잔뜩 실은 오토바이가 휙휙 지나간다. 봉제공장이라고 하지만 간판도 없다. 주로 하청 받아 하는 일이라도 보니, 일이 없으면 임대한 기계를 빼야 하기 때문이다.

동남아 등 해외생산이 늘면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창신동. 하지만 이곳에 변화의 바람이 조금씩 불고 있다. 신사동 가로수길이나 이태원 경리단처럼 카페와 예쁜 가게들이 하나씩 들어서고 있는 그런 변화가 아니다. 허름한 이발소, 코딱지만 한 동네슈퍼. 창신동 골목은 여전히 볼품이 없다. 시차원의 환경정비 사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 흔한 벽화도 없다.

오히려 변화는 밖이 아니라 안이다. 수십 년간 하청생산에만 익숙했던 주민들이 '메이드인 창신동'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아직 종류와 양은 얼마 안 되지만, 자신들이 기획하고 자기 브랜드를 내건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곳 봉제사들의 연령대는 주로 40~50대. 젊은 층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들은 '하청인생'이던 자신의 삶과 동네를 바꾸고 싶은 의지를 갖기 시작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쌍두 마차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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