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한 장면
[코리아데일리 김연주 기자]

20일 일요시네마 (OBS 일 오후 10시10분)는 ‘음란서생’을 방영 네티즌의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영화는 김윤서(한석규)의 무능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당쟁 싸움에 희생양이 된 동생이 갖은 고문으로 망신창이가 되어 실려오고, 가족은 그에게 상소할 것을 요구하지만 그는 핑계를 만들어 그 자리를 피할 뿐이다.

당대 최고의 문필가로 이름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가 무능한 것은 재주가 없어서라기보다는 그것을 펼칠 용기가 없어서이다.

그런 김윤서에게 ‘추월색’이라는 필명 속에 자신을 숨기면서 그 재주를 뽐낼 수 있는 기회란 얼마나 매력적인가. 필명 뒤에 자신을 숨김으로써 윤서는 음란물이라는 하위문화의 ‘진맛’에 빠져들고 잃어버렸던 자신의 능력을 조금씩 회복해간다.

진맛이란 독자들이 텍스트를 통해 만끽할 수 있는 ‘꿈같은 달콤함’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인간은 대체로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법이다.

▲ 영화감독과 주요 출연자
달리 말해 인간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욕망의 대상으로 삼아주기를 바라며, 이는 ‘인정투쟁’으로 이어지곤 한다. 창작의 주체로서 윤서는 독자의 꿈을 실현시켜주는 창작자가 되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자아 실현의 차원이라기보다는 타자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라 보는 편이 옳다. 물론 이는 창작자 전반의 그리고 ‘음란서생’을 연출한 김대우 감독의 욕망이기에 주목된다.

영화의 스토리는 명망 높은 사대부 집안 자제이자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알려진 윤서(한석규)에게 권력은 쫓기에 허망한 것이요, 당파 싸움은 논하기에 그저 덧없는 것. 권태로운 양반 라이프를 살아가던 윤서는 반대파의 모략으로 골치 아픈 사건을 맡게 되고, 이 와중에 저잣거리 유기전에서 일생 처음 보는 난잡한 책을 접하게 되면서 알 수 없는 흥분을 느낀다. 윤서는 급기야 몸소 음란소설을 써 보는 용기를 발휘하게 되는데. 

▲ 영화의 한장면
추월색이라는 필명으로 음란소설을 발표하던 윤서는, 1인자가 되고싶은 욕심에 고신 전문가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 가문의 숙적 광헌(이범수)에게 소설 속 삽화를 그려줄 것을 부탁한다.

광헌 역시 자신의 맥박수치를 끌어 올리는 제안을 차마 거절치 못하고 윤서와 나란히 음란 소설 창작에 빠져 든다. 아름답고 격조높은 문체가 박력 넘치는 그림을 만났으니, 금상첨화, 화룡점정이라! 양반의 점잖음을 잊은 두 사람의 완벽한 음란호흡은 최고의 작품을 탄생시키고, 양반 콤비의 작품은 장안 최고의 화제작으로 급부상하는데. 

장안 아녀자들의 몸을 달아오르게 한 추월색의 흑곡비사에 대한 반응이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윤서와 광헌의 심장은 힘차게 뛰고 피는 뜨겁게 돌기 시작한다. 그러나 인생에서 가장 흥분된 나날을 보내는 두 사람에게 엄청난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구중궁궐 속, 왕의 총애를 받는 아름다운 여인 정빈(김민정)의 손에까지 흑곡비사가 흘러 들어간 것. 장안 최고의 문제작을 쓴 윤서, 광헌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이 영화는 이조시대의 음란물을 그대로 노출시켜 네티즌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 영화의 한 장면
또 다른 한편으로, 윤서는 왕의 여인인 정빈(김민정)의 호감을 얻는다. 윤서는 자신이 갖고자 하는 것은 갖고야 마는 성격(이러한 캐릭터가 제대로 구현되었는가는 의문이다)인 정빈에게도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윤서의 추월색으로서의 작가적 역량이 정빈과의 관계를 어느 정도 반영함으로써 얻어졌다는 점에 있다.

음란물 시장에서는 윤서라는 이름을, 정빈과의 관계에서는 추월색이라는 이름을 감출 수 있을 때만 ‘윤서-추월색’은 타자의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황가(오달수)의 보물이 될 수 있다.

달리 말해 창작 과정에서 ‘윤서’는 ‘정빈’과의 로맨스를 ‘추월색’의 입장에서 다듬어 ‘독자’와 소통하지만(이 역의 과정도 성립한다), ‘정빈-윤서’(로맨스의 영역), ‘추월색-독자’(음란의 영역)가 맺는 관계는 각각 독립적인 영역을 유지해야 하며, 이것이 섞여 정빈이 독자가 되거나 정빈과 추월색이 만난다면, 각자의 영역을 유지시키던 달콤한 꿈은 끔찍한 악몽으로 변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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